K팝의 깊이와 결이 일본 대중음악계에 스며들다
한류의 파급력, 일본 시상식 중심에서 다시 한번 증명되다
한류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음악적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지금, 그 영향력은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 특히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문화적으로 독립적인 흐름을 고수해 온 일본에서의 한류 영향력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최근 열린 ‘뮤직 어워즈 재팬 2025(Music Awards Japan 2025)’에서, 블랙핑크의 로제와 뉴진스(NewJeans)가 주요 부문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일본 음악 시장 내 K팝의 위상을 입증했다.
로제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브루노 마스와 함께 한 곡 ‘APT.’로 ‘베스트 인터내셔널 팝송 인 재팬’을 수상했고, 뉴진스는 그들의 대표곡 ‘Ditto’로 ‘베스트 K팝 송 인 재팬’의 영예를 안았다. 이 두 팀이 수상한 것은 단순한 인기를 넘어, ‘음악성’과 ‘문화적 소통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인정받은 결과라 할 수 있다.
“APT.”는 왜 특별했나 – 브루노 마스와 로제의 파격적 협업이 일본의 감성을 건드린 이유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듀엣곡 ‘APT.’는 발표와 동시에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반응은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일반적으로 일본 음악계는 자국 아티스트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곡은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이유는 명확했다. 브루노 마스라는 글로벌 팝 아이콘과 K팝 대표 보컬 로제의 조합이 기존의 일본 대중음악 청취자층에게는 참신하면서도 익숙한 감성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APT.’는 R&B와 시티팝이 교차하는 듯한 구조를 가진 곡이다. 일본 대중음악의 주류인 시티팝(City Pop)의 정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운드는, 브루노 마스 특유의 감각과 로제의 서정적인 음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폭넓은 연령층의 지지를 얻었다. 특히 로제는 이번 곡에서 자신의 기존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더욱 내밀하고 부드러운 표현력을 선보이며 “보컬리스트”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일본 팬들이 이 곡에 대해 “노래에 풍경이 있다”, “90년대 일본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감성”이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점은 로제가 단순한 ‘아이돌’을 넘어 하나의 음악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단서다. 브루노 마스와의 협업은 단지 화제성에 그치지 않았고, 일본 시장에서 K팝이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이자 성공이었다.
뉴진스, 'Ditto'로 일본 청춘을 매료시키다 – 왜 지금 일본은 뉴진스에 열광하는가?
뉴진스의 ‘Ditto’는 한국에서도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지만, 일본에서의 반응은 또 다른 층위에 있었다. 단순한 ‘K팝 수입품’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찾는 청춘들의 사운드트랙’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일본 10대~20대 초반의 청소년들이 뉴진스의 음악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모습은 매우 이례적이면서도 주목할 만했다.
‘Ditto’의 음악적 구성은 몽환적이고 단순하며 반복적인 멜로디 위에 나른한 보컬이 흐른다. 이는 일본의 감성적 코드, 즉 ‘와비사비(侘寂)’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불완전함 속의 아름다움, 순간적인 감정의 여운을 중시하는 일본 문화 속에서, ‘Ditto’는 오히려 ‘과하지 않아서’ 더 큰 여운을 남겼다.
더불어 뉴진스의 무대와 영상미 역시 일본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이돌 그룹이지만, ‘무대를 지배하기보다는 감정을 공유하려는 모습’, ‘의도적인 미완성’ 같은 전략은 오히려 일본 청춘들의 공감을 자극했다. ‘화려함’이 아닌 ‘담백함’이 중심이 되는 그들의 콘셉트는, 일본의 Z세대가 자신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뮤직 어워즈 재팬’이라는 보수적인 시상식에서 뉴진스가 수상했다는 것은, 단순한 인기나 판매량만이 아니라 그들의 ‘예술성과 메시지’가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곧 K팝이 단순히 수출되는 문화가 아니라, 일본 안에서 ‘재해석되고 수용되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K팝은 더 이상 ‘외부 음악’이 아니다 – 일본 음악계의 경계를 허물다
블랙핑크 로제와 뉴진스가 수상한 이력은 단지 두 명의 아티스트에게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 음악계가 K팝을 더 이상 ‘외래 음악’으로 바라보지 않고, 내부적인 음악 흐름 중 하나로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는 지난 수년 간 K팝 아티스트들이 일본 현지화 전략을 넘어서, ‘음악 자체의 진정성’으로 승부해 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일본의 대중음악 시장은 세계 2위 규모를 자랑하며, 전통적으로는 자국 내 자생적인 문화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시장에서 해외 아티스트가 단순히 인기를 넘어 ‘음악적 권위’를 인정받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로제와 뉴진스는 이러한 틀을 깼고, 일본 대중의 ‘심리적 국경선’을 허물었다.
이들의 수상은 K팝 아티스트가 일본에서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음악적 대화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일본 현지 아티스트들 역시 K팝의 음악성과 퍼포먼스를 자극제로 삼아 새로운 시도들을 감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수상은 K팝이 일본 음악계에 준 영향력을 재확인하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K팝은 지금, 일본에서 ‘문화’로 살아 숨쉬고 있다
이번 ‘뮤직 어워즈 재팬 2025’에서 로제와 뉴진스가 수상한 것은 단순한 트로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들의 음악은 일본 대중에게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 되었고, 기존의 음악적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사례는 K팝이 ‘무대 위의 쇼’가 아니라, ‘일상 속 정서’로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는 향후 K팝 아티스트들의 일본 활동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다. 단순한 시장 확장이 아니라, ‘감성적 공명’을 중심으로 한 문화 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이번 수상. 로제와 뉴진스는 일본 음악계에 단순히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라, 이제는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주체’로 인정받고 있다.